남부군 - 이태
   
 


 
본명 이우태. 1922년 11월 25일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가 되려했던 그는 '조선신문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국학대학 국문과를 2년만에 졸업하고 1948년에 '조선신문학원'을 졸업했다. 그해 서울신문 기자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뒤 8개월간 일하다가 '합동통신'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던 중 6.25를 맞는다. '인민군'의 서울 진입 후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로 흡수되고, 전주로 내려가 통신업무를 맡게 된다.

1950년 9월 20일, 군산 앞 바다 오식도에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전주지사 기자들은 전북도당 간부들을 따라 전북 순창군 구림면 무명골짜기에 들어가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대원이 되었으며, 회문산 '독수리 부대'를 거쳐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되어 17개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1952년 부대에서 낙오된 후, 지리산 기슭 덕산에서 체포된 후, 수감생활, 고된 삶을 살다가 정해영 의원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때의 인연으로 6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975년부터 <남부군>의 집필에 들어갔으나 규제와 내용상의 이유로 출판하지 못하고 있다가 1988년 <남부군>이 간행되어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97년 3월 6일 급환으로 별세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부군> <한글공문편람> <여순병란> <천왕봉> 수필집 <기다림>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등이 있다.
     
     

1988년 초판 발행되어 수많은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남부군」의 재편집증보판. 6.25전란 중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던 '남부군'을 주제로 한 체험적 수기이다. 남부군은 남한 최초의 조직적 좌익 게릴라부대였고 유일한 순수유격부대였으며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인 총수 이현상의 직속 부대였다. 남부군의 일원이었고 신문기자라는 전직 때문에 전사(戰史)편찬을 담당했던 저자는 이 부대가 궤멸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꼼꼼하게 기록했다.

저자가 이 수기를 기록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장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 주세요." 한 청년의 목소리는 언제나 생생하게 귓전에 남아 저자를 재촉했다고 한다. 또 겨울산에 피를 뿌리고 숨져가던 한 소녀가 마지막에 무엇을 말하려 했던가 남겨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이처럼 북한정권에게마저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 간 비극적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를 담아냈다. 또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빨치산과 군경을 합쳐 2만의 생명이 희생된, 그 처절함이 세계 유격전사상 유례가 드문 엄청난 사건이 저자에 의해 비로소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냉혹한 자가숙청 등 빨치산 사회 내부의 모습을 목격한 그대로 들려준다.

 
 

적나라한 빨치산 실록

"나는 5년여에 걸친 소백.지리지구 빨치산 토벌전에서 피아 2만의 생명이 희생된, 그 처절함이 세계 유격전 사상 유례를 보기 드문 사건에 실록 하나쯤은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1922년생인 저자 고(故) 이태(본명 이우태)는 6.25 직전 서울신문.합동통신의 기자로 일하다 인민군의 서울 진입 후 조선중앙통신사에 흡수된다. 전주에 파견 근무 중 조선인민유격대 독립 제4지대, 즉 이현상부대라고도 불리던 남부군단의 대원이 됐고, 전사(戰史) 편찬 일을 맡는다. 이때 목격한 17개월 다큐멘터리가 이 책이다. 신간(2003년)은 88년 출간됐던 초판에 저자의 개인연보를 곁들인 재편집 증보판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상상력으로 역사를 구성한 것이라면 '남부군'은 분식(粉飾)없는 적나라한 사실의 기록이다. 사실이 전달하는 구체성은 섯불리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97년 세상을 떠났다.  (글/신준봉)

 
* 출간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