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囚人
 

특정인물로 살펴본 한국 현대사


1949년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을 살해한 후, 50년 세월 동안 민족의 역적이 되어 온갖 모멸을 받으며 살아온 노(老) 테러리스트 안두희.

1980년 광주, 진압군의 일원이던 청년. 사격 명령에 따라 총을 쏘았고 한 여학생이 쓰러졌다. 자신이 총을 쏘았고 한 여학생이 쓰러졌다.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죽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죽은 여학생의 관을 붙잡고 우는 바람에 유족회 사람들로부터 살인범으로 몰린 젊은 영혼.

1952년 지리산 피아골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잡혀 지금까지 복역중인 비전향 장기수. 1949년 7월 김일성이 김구를 처단하기 위해 조직한 암살조의 일원이기도 했던 81세의 노인. 이 세 사람이 한 병실에서 만났다.

오랜 시간동안 세상이라는 감옥 속에 혹은 실제의 감옥 속에 갇혀서 지내온 이들의 삶.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 감옥으로 숨으려 하며, 감옥 속에 머무르려 하는 이들 세 명의 수인(囚人). 책임지지 않는 역사가 되풀이 되었던 한국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며, 현대사의 대표적 사건들 속에 희생양이 된 이들. 갇혀진삶을산 수인(囚人)들을 바깥에서 이들을 지켜보았던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를 이 작품은 이야기 한다.


오태석
연출
오태석
극단
목화   1998년 공연
출연
노테러리스트/이호재 비전향장기수/전무송 광주항쟁진압군/이명호 김구/조상건 변호사/한명구 의사/정원중 안두희부인/김남숙 외 극단 목화 단원 20명
스텝
조명/구윤영 음악/김미선 안무/최준명 의상/이승무 분장/손진숙 소품디자인/오윤균 음향/안성근  
 


 



공연평

비틀린 역사, 감옥같은 이 세상을 만든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 책임은 누가 짊어질 것인가」
.

오태석씨가 대작으로는 5년만에 선보였던 연극, 「천년의 수인」(囚人)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초분」(73) 「태」(74) 「춘 풍의 처」(76) 「자전거」(83) 「부자유친」(87) 「비닐하우스」(88)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90) 「백마강 달밤에」 (93) 등 숱한 문제작과 화제작을 만들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한국사회의 정체성 을 강력한 힘으로 묘사하고 고발하는 작가」 (연극평론가 한상철)라는 평가를 받는 오태 석. 그가 자신의 극단 목화레퍼토리를 이끌고 가벼움과 복고가 판을 치는 연극계에 묵직한 주제를 갖고 돌아온 것이다.
대학로 동숭아트센 터에서 상연될 「천년의 수인」은 동숭아트센터가 「나, 김수임」에 이어 「한국현대사 재 조명시리즈」의 두번째로 기획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원래 몇년전봄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리기 위해 썼다가 상연이 취소되고 만 「전적」이 있다. 이유는 이른바 「민감한」 주제 때문.

「천년의 수인」의 무대는 2인용 병실이다. 한쪽 병상에는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다른 한쪽에는 광주항쟁 당시 진압군 소속 이었던 병사 「장용구」가 자리잡고 있다. 여 기에 지리산 빨치산부대 출신의 미전향장기수 노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살인자인 동시에 희생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5년만에 무대 오른 ‘천년의 수인’ ..

1949년 6월26일 백범 김구선생을 저격한 안두희는 그후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혼자 「민족적 범죄자」의 멍에를 뒤집어쓴 채 타인의 시선과 발길질을 피해 살아야 했다. 연극은 이런 그가 「끄나풀」에 불과함을, 「책임자는 따로 있음」을 암시한다.

안두희는 『김창룡이 신성모 채병덕 이승만 -그 사람들 노출됐잖아. 지령 내린 자가 그 러구 노출이 되나. 따로 있다구. 그래 내 입 벌릴까봐 죽일라구 그러잖어』라면서, 『내가 왜 죽어, 쏘라고 한 놈 따로 있어요. 그놈들 두 눈 멀쩡해. 「내가 쏘라구 했다」 그러구 자결한 놈 없잖아. 그런데 왜 내가 죽어』라고 부르짖는다.

역사의 슬픈 반복은 안두희의 「개인적 테러」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광주에 서 「집단적 테러」의 형태로 재연된다. 광주 항쟁이 끝난 뒤 「장용구」는 금남로에서 뛰 어가다 진압군의 총에 맞아 숨진 소녀를 잊지 못한다. 영안실에서 소녀의 영정을 발견하고 통곡하던 그는 유족들에게 몰매를 맞고 고발당한다.

안두희와 같은 병실에 수용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십여년의 세 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광주」의 끔찍한 기억 속에 스물두살 4개월의 나이로 멈춰 있다. 그 역시 『당신들이 쏘라고 해놓고-이 제 그런 소리 할 수 있어 당신-당신들 나 빠. 나 사람백정 만들어놨어. 당신들이 가르 쳐줬어』라고 외치며 신에게 『이건 불공정거래야』라고 울부짖는다.

오태석씨는 작품을 쓰며 지난 96년 타살(打殺)당한 안두희의 생애로부터 「책임」의 문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안두희에게 지령을 내린 집단이 책임을 졌다면 그렇게 한평생 혼자 쫓겨다니다 비참 하게 매맞아죽지는 않았겠지요. 광주의 진압군 병사도 굴레에서 조금은 해방됐을 거 고요. 나는 여태껏 살면서 우리 윗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벌을 받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까 결국 백범 암살이 있고 30년밖에 안되, 「광주」 같은 또다른 비극이 일어나게 되고, 이 젊은 병 사 같은 이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또한 그는 비록 안두희나 광주진압군에 대해서는 신문기사로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기사의 행간에서 읽히는 그들의 삶, 일반인과 똑같이 세끼 밥 먹고 가족과 웃음과 사랑이 있었을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이것이 특수한 사례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 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됐다고도 말한다.

더구나 그것은 한반도의 남녘에 한정된 이 야기만도 아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팔순의 미전향장기수는 북한 쪽에서 백범 암살조장 으로 내려왔다 지리산 빨치산으로 들어가 52년에 체포된 것으로 설정된 가공의 인물 이다. 분단과 북한정권의 견고한 구축을 위 해 김일성 역시 백범을 암살하려 했을 것이라는 상상력으로 이 인물을 창조했다고 한 다.

이념대결이 만든 「감옥」에서는 남북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특유의 통찰력으로 「금기의 주제」 파헤쳐..

그리고 뇌졸중을 일으켜 안두희와 같은 병 원에 오게 된 이 장기수는 실제 감옥에서 50여년을 보낸 수인이자 빨치산으로 토벌대 와 양민을 학살한 「살인자」라는 점에서, 또 [책임지는 자 없는] 시대와 역사가 만들어 낸 희생자라는 점에서 안두희나 「장용구」와 마찬가지 인물인 셈이다.

『안두희가 숨도 제대로 못쉬며 살아온 50년 과 우리의 50년 사이에 과연 변별력이 있을 까요? 문민정부가 두번이나 들어섰다고 하 지만 남북한 이념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숨죽이며 살았고 또 정의가 제대로 기 펴본 적 없는 세월을 보낸 게 「감옥살이」나 다를 바 뭐 있습니까. 더구나 그게 너무 길었어요. 50년 전엔 일제 36년이 있고, 이제 앞으로도 IMF에 목이 졸려 또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9년 장마 뒤에도 해가 비친다는데, 이건 1세기가 지나도록 내내 장마예요』

물리적인 감옥(병원)에 갇혀있건, 몸은 자유로와도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건, 「수인」에게는 하루도 곧 천년처럼 길고 고 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법. 「천년의 수인」이란 제목은 이런 중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연극은 안두희와 미전향장기수가 젊은이의 사면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쓴 뒤 소주에 복 어알 찌개를 먹으며 죽음을 택하는 장면으 로 끝을 맺는다. 이들은 자신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결딴나도록 만든 주체」이며, 「국방군 이병 장용구의 과실은 전적으로 자신 들의 과실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탄원서에 밝힌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책임을 진다 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두 노인이 정 답게 숟가락질을 하며 저승길을 재촉하는 병실 한켠에선, 안두희의 침대에 누운 장용구를 안두희로 여긴 자객의 칼에 젊은이가 참혹한 죽음을 맞고 만다.

『연극을 보러온 사람들이, 도대체 누가 이 젊은이를 위해 책임을 져줄 것인가, 내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나를 위해서는 누 가 죽음을 자처하고 나설까. 이런 생각과 질문들을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오태석씨는 담담하게 말한다.

90년대 중반 「로미오와 줄리엣」「서푼짜리 오페라」 등 번역극으로 「외도」를 했던 그는 「가벼운 젊은이들의 연극」에 밀려 힘이 빠진 노장처럼 보였다. 역사와 사회를 해학 속에 풀어내고 꿰뚫어보는 특유의 통찰력, 그 독창성과 힘이 더 이상 발휘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금기의 주제」와 정면대결하여 「구호」가 아닌 인간의 체취와 목소리가 묻어나는 작품, 해원과 감동의 길로 관객을 유도했다. (글/김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