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품은 넉넉하다
임봉출의 품은 더욱 넉넉하다
그는 나무들의 아버지
그의 주변은 이미 잣나무 후박나무 배 밤나무
대추 자두나무들로 에워싸여 있다
그의 주변은 나무의 깊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열매가 주렁주렁한 나무들이 둘러싸여 있다
임봉출이 대성골에 찾아든 것을 열여덟해 전
지리산에 싸움이 끝난 그때
유독 화를 많이 입은 대성골은 전쟁의 화상에 이어
마구잡이로 베어가는 도벌군들로 앙상한 페허
여기서 살던 사람들도 끔찍한 전쟁에 질려 이미
봇짐을 싸들고 떠나버린 대성골에
그는 다 싫다고 떠난 빈터와 바람만 남은 여기 찾아든 것
그는 아직 힘이 남은 그때 속세의 온갖 잡다한 시달림을 벗어나
"그냥 산의 넉넉한 품에 안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더도 덜도 아니고 가꾸는 만치 가지고 먹고 쓰며 산의 넉넉한 목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고 싶었다."
산의 너그러움 엄숙함에 안겨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안고 온 것은 후박나무 씨 한 말 그때만 해도 귀한 것이었던가
십육만원이나 주고 사 들고 왔다
그 한 말 가운데 씨가 된 것은 두 되
적으나 이는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려니 알고
산 여기저기 기름진 데를 골라 심었다
심고 거름 주고 손보기 여러 여러 해
나무들을 자식같이 금이야 옥이야 손보기 여러 해

어느새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의 이야기를 나눈다
나무의 몸짓으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알아차린다
나뭇가지의 흔들림 잎새의 손을 보면 날씨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새소리 벌레소리 흐르는 물소리를 한몸에 지니고 사는 그는
나무와 체질이 같아졌는가 서로의 아픔도 외로움도 즐거움 기쁨을
표정과 빛 하나만으로 능히 알아차린다
그가 나무 안아주면 나무는 몸을 떤다
저 높이 그 끝까지 떨며 서로 뛰는 맥박과 흐르는 피로 이어진다
한몸 한줄의 피로 이어져 흐른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 열매 속 깊이깊이 씨를 간직한 성인의 나무
나무들이 가득한 대성골 노인네 이미 해탈하는 것이 아닌가
나무의 대가족을 거느리고도 그것들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나름으로 그것들이 지닌 능력을
하늘에 떠받치고 저 좋아 사는 것
그런 것이라고 넌지시 웃으니 그것이 해탈이 아닌가
대성골 무더기로 죽은 넋으로 나무로 와 서 있게끔
심고 가꾸어 저렇게 울창한 나무들의 세상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해탈이 아닌가
세상 다 살지도 못하고 시퍼런 젊은 나이에
날벼락 같은 포탄을 맞고 죽어 뼈조차 추리지 못한 그 한을 심어
저렇게 무성한 숲으로 일어서게 한 것 그런 것이 해탈이 아닌가
새는 저 좋아 날아들어 둥우리를 틀고
하늘도 마음이 들었던지 내내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