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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아지발도를 물리친 황산벌
인월면과 아영면의 여러 마을들 이야기

10월 초, 지리산 주변엔 가을을 재촉하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남원으로 접어 들었다. 지리산 산행의 북쪽으로의 진입은 남원에서 88고속도로를 따라가다 지리산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인월(引月)을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1380년 고려 말 우왕 6년에 이곳에서는 왜구와 큰 싸움이 있었다. 금강 어구인 진포 해전에서 최무선 장군의 화포에 배 500여 척을 잃어 버려 퇴로가 막힌 왜구가 경상도 지역으로 우회하며 함양을 거쳐 남원으로 진출한다. 당시 삼도도통사였던 이성계 장군은 이 곳에서 왜구를 맞아 싸우게 되었다.

인월은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함양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신우(辛禑) 때 왜구가 함양을 도륙하고 또 남원산성을 치고는 물러나 운봉현을 불질렀다. 왜구는 인월역에 주둔하고서 장차 북상하겠다고 소리치매 내외 안팎이 크게 소동하였다. 이성계가 남원에 이르러 운봉을 넘어 지금의 황산(荒山)에 진을 치고 왜구와 대치하였다. 적장 중에 나이 겨우 십오륙 세 가량 되고 이름은 아지발도(阿只拔都)라 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성계는 그가 용맹스럽고 날랜 것을 알고 사로 잡으려고 하니 동두란(仁豆蘭)이 말하기를 죽이지 아니하면 반드시 상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맞추고 투구가 떨어지자 동두란이 재빨리 사살하니 적은 기세가 꺾였다.

이성계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여 크게 격파하니 시내물이 붉은 핏물로 변하였다. 처음에 적의 수는 아군의 10배나 되었는데 겨우 70여 명이 지리산으로 도망쳤다. 이성계가 개선하여 돌아오니 판삼사(判三司) 최영(崔瑩)은 눈물을 흘리며 장군을 맞았다. 이 대첩이 있은 지 약 200년이 지난 선조 10년(1577년) 8월 당시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이 고려사와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고증하여 조정에 상소, 윤허를 받아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운봉현감 박광복이 모든 공사를 담당하여 화수산 남록에 비석을 세웠다.

1945년 1월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일제는 이 비를 폭파하고 비문 각자를 모두 지워 버렸다. 현재 인월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 부락의 지명은 이 태조의 업적을 기리고 당시의 대첩과 관련된 이름들로 바뀌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다른 마을들보다는 6.25 피해 덜 받아

지리산 인터체인지를 벗어나면서 양옆으로 먼저 만나는 부락이 인풍리(引風里)다. 이 마을에서 7대를 이어가며 살아온 박남보(朴南甫·69)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계순(67) 할머니와 사이에 아들 둘과 여러 명의 딸을 두셨다고 한다. 150여 년 전 5대 조부께서 비결을 보시고 지리산 주변으로 들어오시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인풍리는 길 양쪽으로 내인풍과 외인풍으로 나뉘어져 있다. 박 할아버지가 사시는 내인풍은 현재 40여 호로 일제 때는 60여 호가 살았다. 일정 초기에는 인풍리 북쪽의 면소재지가 위치했던 갈계리에 국민학교가 있었고, 그후 당시에는 너더리라 불리던 현재의 강평 마을로 옮겨 왔다. 60여 명의 1학급이 졸업하던 다음해 해방을 맞았다.

당시에는 논밭농사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대부분 소작이었고 운봉에 살던 만석군이 인월의 대부분 논을 소유하고 있었다. 초가집에 낙엽을 긁어 때는 어려웠던 마을이었으나 그래도 일제 때는 진흥촌으로 선정되어 관에서 지원을 받았다. 뽕나무를 재배하며 누에고치를 치고 담배농사도 많이 하였다.

원래 인풍리는 경주 이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 경주 이씨는 한 가구만이 남아 있다. 6.25 전후해 반란군과 빨치산이 부락에 자주 내려왔으나 다른 마을에 비해 인명 피해가 없었다. 88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지나가지만 자동차 소음만 심할 뿐 마을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현재는 70에서 95세에 이르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40여 년 전 박 할아버지가 지리산을 찾아 천왕봉을 등정했을 때는 돌담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간이 숙박시설이 있었고 여자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한다. 진주쪽으로 50m 정도 내려가 물을 가지고 올라왔다고 하니 지금의 천왕샘 인것같다.

박 할아버지는 인풍리에 얽힌 구전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일본의 적장 아지발도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자 할 때 아지발도의 누나가 전장에 나가면 황산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이에 아지발도는 누나에게 핀잔을 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경상도 함양땅까지 침략해 들어온 아지발도는 누나의 말이 걸려 마침 산청의 왕산(王山)을 황산으로 착각하고 조심하였으나 아무 일이 없자 안심하고 황산까지 이르렀다.

팔랑재를 넘어온 아지발도의 기세는 대단했다. 소문에 아지발도는 몸 전체가 쇠로 무장되어 있다고 하여 쉽게 죽일 수 없어 투구를 떨어뜨려야만 한다고 하였다. 이에 이성계 장군이 도술로 바람을 일으키며 투구를 쏘아 맞추니 투구가 땅에 떨어졌다. 이때 옆에 있던 장수가 재빨리 아지발도를 쏘아 맞추니 아지발도의 말이 놀라 뛰어서 지금의 피바위까지 와서 죽었다 한다.

인근의 중군리는 당시에 군사들이 주둔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사창 마을은 무기를 저장하는 무기고였다. 황산 바로 옆에는 명석재가 있다. 이 명석재는 돌들이 전부 정상을 쳐다보고 있는 기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성계 장군이 돌을 사용해 아지발도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돌 대신 활을 사용하므로써 돌들이 제구실을 못했다고 일제히 울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운봉을 소개하는 운성지(雲城誌)에 나타나는 인월 일대의 지명에 대한 기록을 모아 보았다.

·팔랑치(八郞峙) 또는 팔령치(八嶺峙) :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주천면 조경리 태생의 조경남 장군이 이곳에서 8명의 장사와 성을 쌓아 왜적과 대항하여 크게 이겼다. 그후 이곳을 팔랑재라 하였다.

·인풍(引風) :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 장군이 황산대첩시 인월에서는 달을 끌어 솟게 하고 이곳에서는 바람을 일게 하여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왜적을 섬멸시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무리(西茂里) : 황산대첩 후 섬멸된 적의 시체를 내(川) 서쪽에 묻었다 하여 서무듬 또는 서무라 하였다.

·취암리(就岩里) : 마을 뒷산에 수리바위에서 유래됐다.

·사창(社倉) : 현(縣)의 창고가 있었다.

·정봉(鼎峯) : 황산대첩시 솥을 걸어 군사들의 밥을 지었던 곳이다.

·자래(自來) : 마을 지형이 자라(자래)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구평(龜坪) : 마을 뒷산이 거북이 등과 같다 하여 유래, 또다른 이름으로 왜구의 시체를 풍천(楓川) 동쪽에 묻었다 하여 동무듬이라고도 불렸다.

박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마치며 6.25때가 제일 고생은 됐었으나 그래도 지리산 주변의 다른 마을에 비해 식량 고생은 덜했다고 하셨다. 얼마 전부터는 인월면의 성산 마을은 놀부 마을, 아영면의 상성리는 흥부 마을로 불린다고 하나 인월리에서 만난 정용웅 할아버지는 강력히 부인하고 계셔서 흥부 놀부 마을 선정에 대하여는 주민들간의 이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군을 북한군으로 오인 폭격

아영면의 인풍리를 지나 인월면으로 접어들면 좌측으로 취암리 입구에 이른다. 취암리는 취암, 덕실, 구평(동무)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9대째 취암 마을에서 살아오신다는 오형순(72) 할머니를 수소문하여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옆마을인 구평에서 취암으로 20세 때 시집을 왔다. 오 할머니는 일제 때 어려웠던 일부터 이야기하셨다. 61년 전으로 기억하시는 기묘년에는 물이 부족하여 큰 흉년이 들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보리이삭을 훑어 먹었고, 물이 부족하여 물을 대지 못하는 논에는 벼 대신 메밀을 갈기도 했다.

병자년의 대홍수 때는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보았다. 여자라 하여 당연히 학교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시절, 지금의 인월 시장터가 인월국민학교 자리였다. 한 학년이 두 개 반 정도 있었다고 한다. 마을 대부분이 길쌈을 하여 옷감을 자급자족했고, 자연 뽕나무와 누에를 많이 키웠다. 삼베, 명주베, 면베 등을 만들어 70리 되는 남원장에 가지고 나가 팔고 소금이나 모자라는 쌀 등 생활필수품을 사가지고 왔다. 차편이 전혀 없었던 때라 새벽밥을 먹고 연재를 넘어 남원장을 다녀오면 늦은 밤에나 집에 도착하곤 했다.

마을에는 형편이 곤란한 사람들이 많았다. 40여 년 전부터 광목, 비단 등 새로운 옷감이 나오면서부터 길쌈을 하지 않게 됐다. 취암리는 일제 때 논이 많지 않았으나 개간하여 지금처럼 논을 많이 만들었다. 일제 때는 마을에 디딜방아간이 두 군데나 있었으나 생산된 쌀은 전부 공출로 빼앗기고 기름을 짜고 남은 콩깨묵을 식량으로 대신 배급했다.

일제 때 80여 호 되던 취암리는 현재 50여 호로 그나마 원주민은 외지로 떠나고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 와서 살고 있다고 한다. 6.25 전후해 반란군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인근 산에 방공호를 파놓고 마을 사람들이 피신했다. 빨치산이 준동하던 때 인월국민학교에 주둔해 있던 아군을 빨치산으로 오인한 비행기의 폭격으로 많은 군인들이 죽었다 한다.

현재의 마을은 논밭농사 위주로 비교적 잘사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인풍리는 마을 한쪽에 공동 우물을 설치해 상수도로 공급하고 있으나 취암리는 집집마다 지하수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 취암리 역시 고속도로 개통이 마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군 징용으로 캄차카반도서 근무

오 할머니댁을 떠나 길 건너 아영면의 봉대리를 찾았다. 길 양쪽으로 반쯤 추수를 끝낸 논엔 비바람으로 쓰러진 채 누워있는 벼이삭이 안타깝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마을에 인적이 드물다. 역시 봉대리에서도 대를 이어 살아오시는 노인을 수소문한 끝에 15대째 이곳에서 살아오시는 김기주(金基株·84)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동갑이신 김계완 할머니와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셨다.

15대 조부께서 400여 년 전 난을 피해 지금의 지리산휴게소가 있는 아곡 마을로 정착하셨다 한다. 봉대리란 이름은 원래 이 마을로 산에서 토사가 많이 밀려 내려와 쑥대가 많이 자란다고 쑥대 봉자를 썼으나 일본인들이 마을 이름을 개명하며 한자가 어렵다고 받들 봉자를 썼다고 한다.

6대 조부께서 서당 훈장을 하였고 그의 제자들이 관직에 많이 올랐다. 8대조 할아버지의 묘를 황산 밑 점봉에 썼다가 이 태조의 유적지를 훼손했다며 나라에서 큰 화를 당할 뻔한 것을 당시 벼슬하던 제자들의 도움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일제 때 봉대리는 60여 호였으나 지금은 50여 호가 몰려 살고 있다. 주로 벼농사를 하고 있던 일제 때는 서너 집만이 지주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일을 해주고 식량을 얻어 왔다. 봄에는 보리 나기까지 초근목피로 버텼고 밥 한 끼 옳게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마을 전체가 삼베, 면베, 명주베로 호구지책을 삼았으나 양식문제가 제일 고생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공출은 말도 못하게 심해서 각종 공출에 응하지 않으면 일본놈들이 데려다가 두드려패곤 했다.

5일마다 열렸던 남원이나 인월, 함양장에 나가면 생필품을 사왔지만 변변히 가지고 나갈 물건조차 없었다. 김 할아버지는 일제 때 면소재지에 있던 국민학교를 4학년까지 마치고 17세 때 다시 5학년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기혼자도 국민학교를 많이 다녔다 한다. 어려서는 한문을 배웠고 지금의 인월국민학교는 할아버지 3학년 때 신축하였다.

27세에 일본군에 징용으로 끌려가 캄차카반도 인근 섬까지 가서 비행장 건설을 했다. 악조건의 기후 속에서도 훈련이 심했다. 6.25 때 반란군이나 빨치산에 의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마음고생이 심했다.

인월은 남원과는 300여m나 차이나는 고지대로서 15일 가량의 기후 차이가 나 때로는 농작물의 냉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김 할아버지는 현재 일부 논을 소작주고 두 마지기(400평)의 논농사를 하고 있었다. 400평 논에 풍년이 들면 벼로 19가마, 쌀로는 7∼8가마가 생산된다고 한다. 올해는 비가 많이 오고 벼가 많이 쓰러졌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없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평생 고생은 말도 못하고 먹고 사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었다. 김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동안 가뜩이나 어둠침침한 방안의 형광등이 오락가락 깜빡거린다. 이름모를 잡초들이 가득한 김 할아버지의 뜰에는 가을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적막해 보이기까지 한 동네엔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있었다. 지리산 주변의 마을은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아직도 일제 때 껍질 벗겼던 소나무가

봉대리를 내려와 서무리(西茂里)를 찾았다. 인월 일대의 마을은 97년 5월까지는 동면(東面)으로 불렸으나 일본인들이 개칭한 동면이란 이름은 의미가 없고 역사적으로 인월이 옳다는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인월면(引月面)으로 변경되었다. 서무리는 인월 바로 옆 마을로 왜구의 무덤 자리라고 알려져 왔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마을이 제법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서무리에서 3대째 살아 오시는 조대근(趙 根·71) 할아버지를 만났다. 3대 조부께서 이 마을로 이주해 오시면서 마을 훈장을 지내셨다. 서무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논밭도 많지 않았고 일제 때는 식량을 강제공출 당하느라 말 그대로 초근목피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식량 대신으로 삼았던 쑥은 뿌리마저 남아나지 않았다. 쌀 한 줌을 넣은 쑥죽을 끓여 먹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을 잘라내 물에 불려 먹기도 하였다. 아직도 이 마을엔 일제시대에 나무껍질을 벗겼던 소나무가 그대로 있다고 한다. 어쩌다 배급되는 콩깻묵으로는 배고픔을 이길 수 없었다.

학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한 부락에 3명 정도 학교를 다녔다. 제일 귀했던 소금은 벽소령을 넘어 하동까지 가서 져다 먹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로 옆 황산을 왕산이라 부른다고 했다. 일제 때는 100여 호의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80여 호로 줄었다. 마을 대부분이 벼농사로 생업을 잇고 있었다.

흥부 마을 놀부 마을 논쟁 일어

인월리로 내려왔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사거리엔 지리산국립공원을 알리는 안내판이 커다랗게 서있고, 옛날 역마의 고장답게 지금도 남원과 함양, 그리고 지리산을 잇는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수소문 끝에 이 마을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79세의 정용웅(鄭龍雄) 할아버지를 만났다. 김말임(72) 할머니와 사이에 5남매를 낳아 길렀으나 전부 객지로 나가고 지금은 널직한 마당을 가진 한옥에 두 내외만이 살고 계셨다.

정 할아버지는 원래 뱀사골 안쪽 부운 마을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지내다 해방 4년 전 인월국민학교 교사가 되면서 인월로 나와 정착하게 되었다. 정 할아버지는 고려 말부터 있었다는 인월장터에 대해 많은 역사자료를 갖고 계셨다. 인월장터는 옛부터 지리산 특산물이었던 약재, 목기, 과수 등이 많이 나왔고, 일상생활용품 등은 물물교환 형태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특히 우시장이 번성하여 많은 거래가 있었다고 한다.

장날은 3일과 8일이었는데 3일은 아랫장터, 8일은 인월의 구사거리와 지리산 진입로 입구의 사거리 사이에 장터가 섰었으나 60여 년 전 큰 수해로 아랫장터는 폐지되었다. 30년 전부터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남원이나 함양으로 장을 보러 나가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현 인월장터는 차츰 그 규모가 줄어 들었다.

일제 때는 80여 가구의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300여 호로 늘었다. 생업은 상업과 농업이 반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88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량만 늘었지 지리산 등산객은 쉬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마을에 별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땅값은 많이 올라 평당 3만 원 하던 땅값이 몇 십만 원을 호가하고, 길 양옆으로는 몇 백만 원 하는 땅도 있다고 한다.

해발 450여m의 고랭지인 인월은 고랭지 감자, 배추, 무 등을 생산하고 논밭농사도 겸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지리산 끝자락인 덕두봉 계곡물을 받아 간이 상수도시설을 설치하여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지리산 주변의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농가부채에 대한 연대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 집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이 생기면 마을 전체로 번져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월은 지리산 주변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넓은 논밭에 둘러싸여 있어 특산품 생산의 지리적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일제 때는 무쇠솥 제작하는 곳이 있었지만 곧 없어졌다. 인월면 노인회장직을 맡고 계시는 정 할아버지는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계셨다. 최근에는 모대학 교수가 용역을 받아 주변 마을에 대한 고증을 통해 흥부, 놀부 마을을 선정하였으나 형제의 마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 부당성을 설명하셨다. 위치야 어떻든 인월과 아영면은 흥부 놀부의 고장이기도 했다.

쏟아지는 비속에도 경찰관이 서있는 지리산 인터체인지 입구를 벗어나 88고속도로를 접어들어 남원 방향으로 귀로에 올랐다. 600여 년 전 왜구를 무찔렀던 이성계 장군의 성난 포효가 이곳 여러 마을에 짙게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