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마을 >>
화개장터는
옛말… 지리산의 주요 진입로 구실
쌍계사 입구의 삼신리·정금리·탑리 이야기
지리산의 남쪽을 8월의 섬진강이 흐른다. 남원을 지나 지리산을 넘어 구례에서 만나는 섬진강은 한여름의 더위속을 시원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을 따라 내려가다 토지면 외곡리를 지나 전남 경계를 벗어나면 곧 경남 하동군 화개면 입구인 유명한 탑리(일명 화개장터)에
이른다. 지리산 주능선의 삼도봉과 명선봉, 세석에서 흘러내린 옥수가 신흥 마을에서 만나 화개천을 이루며 그 끝자락이 섬진강변에
이르는 곳에 삼신리와 정금리, 탑리의 세 마을이 모여있다.
정말로 뜨거운 8월의 한가운데 하동군내에 위치한 화개면 입구의 몇 개 부락을 찾아 보았다. 화개면은 신라시대부터 지리산 문화권의
중심지로서 지금의 칠불사에 금법(琴法)의 발상지인 운상원(雲上院)이 있었고,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대렴(大廉)이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왕이 이를 지리산의 남쪽 화개(花開)에 심게 하였으며, 화개천변의 쌍계사(雙磎寺)는 불교음악인
범패(梵唄)의 발상지였다.
하동군지는 화개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하동읍에서 50여 리 이르는 곳에 섬진강의 본류와 화개천이 마주치는 화개장터에 이른다. 여기서 의신 마을까지 약 16km의 화개계곡은 수많은 역사와 수려한 자연, 그리고 명승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십리 벗꽃길을 따라 오르면 자연다원의 야생차 나무의 파란 잎이 돌틈에 솟아 오르고 천년의 역사속에 죽로차(竹露茶)의 향기가 코끝에 스쳐온다…중략…이 벗꽃길은 1930년대 화개면장이 지역개발을 위하여 면민의 힘을 모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도로와 화개교를 개설하고 군내 유지의 성금으로 복숭아나무 200그루와 벚꽃나무 1200그루를 강변과 도로변에 심어 오늘의 십리 벚꽃길의 터를 닦았다…중략…삼신동 물레방아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르면 지리산 대가람 쌍계사가 뒷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계곡위에 보인다. 겨울에도 따뜻해서 칡꽃이 핀다(花開)는 골짜기엔 자비의 불타가 미소진 얼굴로 축복의 손을 흔드는 것 같다.’
하동군지의 저자가 보았던 화개천변은 이제 옛모습이 되었고 몇 년 전 지자체가 들어서면서 화개천변 40여 리 계곡엔 각종 음식점과 찻집, 숙박업소 등이 들어 차면서 화개천의 수질이 변하고 밤에도 불야성을 이룬다. 옛같지 않은 행락문화로 몰려드는 자동차는 화개천변의 깊은 계곡까지 파고 든다.
화개장터가 있던 탑리 마을
그 화개천변의 첫번째 마을 탑리를 찾았다. 흔히들 화개장터가 있던 곳이라 하여 지금도 장터마을이라 불린다. 탑리는 화개장터쪽의 장터 마을과 화개천 다리 건너 원탑 마을로 나뉘어 있다. 장터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점과 숙박업을 하고 있으나 건너편 원탑 마을은 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화개장터’란 돌표지석이 있는 광장 삼거리에 위치한 곳에서 아들과 함께 제일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이삼래(72) 할머니를 만났다. 고향이 화개천 건너 정금리인 이 할머니는 16세 때 19세인 남편과 결혼하여 5남 2녀를 두었다. 일제 때는 시댁인 화개천 상류의 범왕 마을에서 살았다.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마을 전체가 산속에서 숯을 구어내다 팔았고 운송수단이 귀했던 시절이라 동목용으로 아름드리 나무를 잘라내면 섬진강에서 뗏목을 만들어 강을 따라 하동에 있던 제재소로 보내졌다. 논밭농사가 조금 있었으나 각종 공출에 시달리며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다. 그나마 조금씩 나던 감자가 식량이 되었다.
일제 때의 화개장엔 소거래터가 있었고 큰 도살장이 함께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담배잎이나 고사리 등을 가져나와 팔고 청어 등 해산물을 사갔다. 옛 화개장터라고 알려주는 길 양쪽엔 옛날의 초가집 대신 현재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벽소령 넘어 가는 오솔길에는 산너머 북쪽의 함양에서 오는 장사꾼들과 주민들로 밤낮없이 붐볐다.
“옛날에는 더 추웠던지 일제 때는 섬진강이 겨울에는 꽁꽁 얼었지요. 안 얼기 시작한 지가 40년쯤 됐어요.”
이 할머니는 화개천 앞 섬진강이 얼어 얼음 위로 강 건너 마을을 다니셨다 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화개장터 자리는 섬진강과 화개천물이 장마철이면 범람해서 상습침수지역이었던 것을 하동군의 협조를 얻어 많이 복토를 해서 지반을 높이고 현재의 건물들은 87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례와 하동간을 잇는 도로는 일제 때는 1차선 비포장도로로서 하동이나 구례에서 오는 차들은 먼 곳에서 차가 오면 한동안 기다리다 지나가고 했던 것을 88년에야 길이 확포장되었다. 주변 도로의 개통은 화개장터에 뜻하지 않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6일, 11일의 화개장. 2일, 12일의 하동장. 3일, 8일의 구례장 등 모두 5일장으로 지금도 지켜져 내려오고 있으나 화개장터는 교통수단의 급격한 변화와 발달로 인근의 구례나 하동장을 이용하게 돼 이제 화개장은 간신히 그 명맥만을 이어오며 건물 사이에서 초라하게 버티고 있다.
옛날에는 부산에서 쌍계사로 오는 버스가 하루에 한 번 있던 것이 고작이며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88년 관광객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객지에서 찾는 사람이 없어 화개사람만 상대로 장사를 해야했다. 6.25 전후해서는 화개천 상류의 사람들이 빨치산을 피해 용강 마을까지 소개되어 살았으나 한때는 빨치산이 원탑 마을에 있던 면사무소를 사흘간 점령하며 치열한 전투 후에 다시 산속으로 쫓겨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한청전투대장으로 빨치산과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할머니 어릴 때는 쌍계사까지밖에 길이 없었으나 6.25때 군인들이 작전도로로서 길을 많이 냈다. “6.25 후에는 못살 세상이었어요. 빨갱이와 조금만 접촉해도 잡아갔어요.” 아직도 이 할머니의 가슴속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전에는 마을의 식수가 곤란했으나 지금은 섬진강에 관정을 뚫어 공동수도를 설치했고 개인집도 대부분 음식점과 숙박업소로서 개인관정으로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지리산 탐방의 주요 진입로 구실
이삼례 할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화개장터 광장으로 나섰다. 대부분 주차장으로 변한 광장의 한쪽 구석에는 이곳이 화개장터였음을 알리는 돌비석이 서 있었다.
‘섬진강 수운이 문을 열었던 때부터 영남과 호남을 잇던 이곳에 사람이 모였고, 요새로 단장되어 화개관이라 불려진 삼한시대에 장터 구실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수많은 세월속에 삶의 터전이 되어온 화개장은 1726년에 번성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이 되었고, 객주의 오고감이 끊이지 않았으나 교통과 유통구조의 발달로 쇄퇴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옛 향수와 추억 속의 땅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수해상습지로 그 구실이 상실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어쩔수 없는 시대 상황으로 역사의 이끼만 남았구나. 역마의 공간적 배경이었던 곳 지나는 길손에게 화개장임을 알리는 돌을 세워 옛일을 되새겨 본다.’
1991년 8월 하동군수와 주민들은 이 비석을 세우면서 화개장터의 흔적이나 남겨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화개장터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이 서로 만나 장을 여는 곳도 아니요,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그런 장터도 아니요,
소달구지가 다니는 그런 길도 아니었다. 그러나 화개장터 자리는 화개동천의 쌍계사와 칠불사로 오르는 길목으로 국립공원 지리산 탐방의
주요한 진입로로 더 큰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제일식당 바로 옆에서 그린파크란 숙박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황종연(黃宗淵·60) 아저씨와도 장터 마을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300여 년 전 황 아저씨의 9대 선조께서 살곳을 찾아 지금의 범왕 마을 아래 목통 마을로 들어오셨다. 그후 조금 밑으로 내려 온 용강리에서 태어난 황 아저씨는 김옥진씨(61)와 사이에 2남2녀를 두었다.
일제 때는 담배경작하는 주민들이 많았고 해방 후 부락의 왕성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6.25사변 때 학교가 전부 불타 버렸다. 6.25를 거치면서 공부 장소를 무려 열세 번이나 옮겨다니며 겨우 10여 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지금의 쌍계사 대웅전 옆 요사채에서도 공부했던 기억을 이야기하셨다.
“화개는 전답이 적어 생활이 곤란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농사에 어려움을 겪던 71년. 용강에서 화개장터로 이주하여 제법 북적댔던 장터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에 막걸리 열 말씩을 팔 정도로 번성했던 화개장터는 섬진강의 범람으로 잦은 침수를 겪다가 87년에 현재의 숙박업소 건물을 신축하였다. 황 아저씨의 어릴 때 기억으로는 화개장터에는 각종 농산물과 섬진강을 따라 올라오는 범선에서 쏟아내리는 해산물 등의 거래가 있었고, 특히 대형 소 거래터가 있어 장날이면 몇 백 마리의 소가 모여들곤 했다.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는 화개천 안의 화개약수는 주민들이 개발하려다가 수질문제로 실패하고 지금은 찾는 사람이 뜸하다고 한다. 화개약수는 벚나무길을 따라 쌍계사쪽으로 오르다가 일방통행이 거의 끝나는 곳의 오른쪽으로 화개천안의 바위틈새에서 강한 철분의 수맥이 솟아오르나 물맛이 특이하고 찾기가 불편하며 특별한 안내 표지판마저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황 아저씨는 화개장터 삼거리에 숙박업소를 88년에 개업하였으나 최근에는 IMF여파로 관광객이 90% 이상 줄었고 불과 3년 사이에 화개천변의 숙박업소가 열 배 정도 불어났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탑리를 떠나 화개천 너머 대비 부락으로 올라갔다. 근 2000년 전인 서기 97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열 왕자중 일곱 왕자가 인도에서 온 승려인 외삼촌 보옥선사(장유화상)를 따라 가야산과 지리산을 넘나드는 수도생활중 지금의 칠불사터에 운상원이란 암자를 짓고 마침내 성불하였다. 이때가 103년이었다.
수로왕과 왕비가 일곱 왕자를 보기 위하여 머나먼 이곳 칠불사로 찾아 들어왔다. 그러나 수로왕은 왕자들의 성불소식만을 듣고 아쉽게 발길을 돌리던 중 산 밑의 두 곳에 절을 세웠고 왕이 머물렀던 곳에 범왕사(梵王寺), 왕비가 있던 곳에 대비사(大妃寺·지금의 대비리)를 지었다고 전해온다.
가락국 대비사가 있던 마을
그 대비사가 있었다고 전해오는 지금의 대비 부락은 옛절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10여 호가 산중턱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 부락에서 오래 사셨다는 임종서(71) 할아버지댁을 찾았다. 임 할아버지는 간밤의 초상집을 방문했던 여독으로 누워 계셨고 대신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오서운(71) 할머니도 역시 이 마을 토박이였다.
19세에 시집와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았으나 모두 객지로 나가고 지금은 내외분만 살고 계셨다. 해방 후에는 제법 가구수가 많아 대비 자체가 큰 부락을 이루고 있었으나 주민들이 어려운 살림에 뿔뿔이 흩어지면서 10여 가구만 남아 아랫마을인 정금리와 합쳐졌다. 그래도 대비 부락이란 이름은 이어내려오고 있었다.
역사의 흔적속에서 철저히 지워지면서 동네사람들조차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산비탈에 위치한 이 부락은 논밭농사도 적고, 해방 후에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생활을 이어 나갔다. 올해는 이 일대를 태풍이 지나가면서 밤나무, 감나무 가지가 대부분 찢겨져 나갔고 고추가 다 떨어져 더 큰 걱정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취나물, 곤달비 등도 뜯어다 팔았으나 지금은 그것마저 끊어지고 약간의 논농사를 하고 있다.
협소한 땅이나마 이곳 저곳에 차밭을 조성하여 차나무를 기르고 있고, 5∼6년 전부터 심기 시작한 차밭이 이 마을의 주소득원이 되고 있다. 주변 산에는 밤나무가 무성하고 계단식 논이 대부분 차밭으로 바뀌었다. 오 할머니댁 입구에는 몇 백 년이 되었는지 모르는 샘이 있었고, 주변은 오래된 돌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오 할아버지의 부모께서는 이 샘에 정성을 들여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이 근처 어딘가에 있었을 대비사를 생각하며 대비 부락을 내려와 정금리로 들어섰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이 마을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김길열(金吉烈·72) 할아버지를 만났다. 앞뜰에 두꺼비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두꺼비산장이란 음식점을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상께서 이 마을로 피난해오셔서 360여 년이 넘게 대대로 살아오신다고 하였다. 김 할아버지가 만 18세가 되던 해 현재의 화개초등학교 자리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진해로 징용을 갔다. 당시는 해방 직전으로 미군의 일본 본토 폭격이 심해 일본 천황이 진해로 피신했다는 설이 나돌아 진해에도 폭격이 심했었다. 그러면서 곧 해방을 맞이했다.
“달빛에 산이 내려온다”
일제 때 정금리(井琴里)는 70호 정도가 살았고 주변 마을인 정금, 도심, 중촌, 혜갱이 마을 등 4개 부락을 합쳐 정금리라 하였다. 주변 골짜기에는 신라시대 고운선생이 놀이를 했다는 독소골, 강정이골, 미륵정골, 일제시 물방아가 있었다는 물방아골 등의 지명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일제 때에는 담배나 화전으로 지냈고, 주변 농토가 작아 지리산의 소출물인 약초 등과 해우섶 등을 해다 팔았다. 각종 공출물에 시달렸고 식량이 없어 칡 등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흉년 때만 올라온다는 산죽 열매도 적잖이 식량에 도움이 되었다.
정금 마을과 이웃인 신촌 마을 사이에는 노루목이란 지명이 전해 온다. 풍수상 산이 움직여 내려오면 마을에 길한 일이 생긴다는 곳으로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모른 척하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신천 마을에 사는 아낙이 달빛에 산이 걸어내려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동네 사람들에게 산이 걸어간다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만 산이 멈춰 버려 지세가 죽고 말았다 한다. 일설에는 이곳에서 인재가 나지 못하게 당나라의 장군이 이 산의 길목을 끊어 버렸다 하여 노루목이라 불린다고 전해온다.
옛부터 북적댔던 화개장터는 많은 소금장사들이 화개천변에서 잠을 자곤 했다. 옛날에는 섬진강이 깊어 기관배라 불렸던 통통배가 올라 다녔다. 할아버지 일곱 살 때쯤인 병자년에 지리산의 온 주변에 큰 지진이 일어나 장독이 깨지고 산에서 돌이 굴러내려 골안쪽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죽고 큰 산사태가 일어났었다.
6.25 전 여순반란사건 때는 이 지역의 전투가 심해 화개장터에 주둔중이던 수도사단과 반란군 사이의 전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현재의 정금 마을은 40여 호로 줄었으나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자연 차밭이 많아 씨를 받아 키우고 있다. 김 할아버지도 개인소유 1000여 평의 차밭에서 차를 생산하고 있고, 마을공동의 제다원이 있거나 개인적으로도 차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67세의 이봉암 할머니와 셋째 아들인 김양섭씨(34) 내외와 함께 생활하고 계셨다.
화개아리랑 40절 채집한 안성업 아주머니
못다한 많은 이야기를 뒤로 미루고 정금리를 떠나 다시 화개천을 건너 삼신리(三神里)를 찾았다. 6대째 이 마을에서 사신다는 이영조(70) 할아버지를 만났다. 삼신리도 일제 때는 70여 호로 면소재지가 위치했었으나 지금은 64호로 조금 줄었다. 황인순(70) 할머니와 살고 계셨다.
일제 때는 지금과 같이 농토가 적어 주로 산판일에 의지했고, 화개장터에 약초 등을 캐서 가지고 나갔다. 당시에는 대부분 초가집이었으나 볏집이 적어 산에 가서 쇠대란 나무를 해다 지붕을 엮었다. 농사 없는 사람들은 지붕 잇는 것이 큰 걱정거리였다. 조금씩 나오는 볏집이 소여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소를 키웠으나 사료값은 오르고 소값이 떨어져 지금은 키우지 않고 있다.
삼신리는 옛부터 벙어리가 3년 살면 말을 하고 나간다는 마을로 지세가 무서웠다 한다. 밭농사가 적고 주로 밭에 녹차를 심어 기르고 있다. 특히 감이 많이 나오는 마을이나 올해 태풍으로 큰 피해를 봤고, 농토가 적어 마을 전체가 생활에 곤란함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지금도 지리산엔 호랑이가 있다고 믿고 계셨다. 멧돼지와 곰은 물론이고 겨울에 눈밭에 한 발씩이나 되는 발자국이 일렬로 찍혀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호랑이의 흔적이라고 하셨다.
화개장이 줄어 들면서 요사이는 구례장으로 많이 나간다. 구례장은 채소가 싼 편이며 버스편도 완행이라 잘 세워 주나 하동장 길은 버스편이 불편하여 어쩌다 나가 주로 어류나 육류를 사오곤 한다. 이 할아버지댁 마당에는 고추와 토란대를 말리고 있었고, 몇 개의 벌통속으로 많은 벌들이 바삐 드나들고 있었다.
발길을 돌렸다. 삼신 마을을 떠나 바로 위 마을인 침점(針店) 마을을 찾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신리 침점 부락이었다. 동네주민들이 꼭 만나보라고 소개해준 안성업(安成業·60) 아주머니를 만났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친정 어머니인 90세의 이다남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안 아주머니는 화개 일대 부락의 유래와 구전되어 오는 타령 등 귀중한 화개 관련 자료 등을 모아 <화개예찬>이란 책을 내어 인쇄중에 있었다.
6.25사변시 5학년이었던 안 아주머니는 졸업 당시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화개의 유래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구전되어 오는 타령 등을 수집했다. 여러 매스콤에 소개된 적도 있고 그 자신이 직접 문화마당에 나가 타령을 부르기도 했다. 인쇄중인 그의 책자에 소개된 ‘화개아리랑’은 40절까지 있는 긴 곡으로 98년에 정리되어 처음 발표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중 1절을 옮겨본다.
‘지리산 상봉의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길에 다 녹아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
안 아주머니의 타령 수집은 친정어머니인 이다남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이다남 할머니가 구술한 큰애기 타령은 지리산 남쪽 몇 개 부락의 당시 실상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둥구마천 큰 애기들은 곶감깎기로 다 나가고, 의신박단 큰 애기들은 해장작패기로 다 나가고, 당재넹평 큰 애기들은 바래기매기로 다 나가고, 화개영국 큰 애기들은 알밤줍기로 다 나가고, 액양골 큰 애기들은 사랑출입으로 다 나간다.’
안 아주머니에게서는 주변 마을의 지명에 대한 유래도 들을 수 있었다. 침점 마을은 새각시가 시집 와서 반지그릇 놓고 바느질하는 형국이라 하였고, 일설에는 김수로왕비가 지나가다가 옷고름을 고쳐달았다 하기도 해서 침점암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한다. 삼신리는 삼신사란 절터가 있던 마을이고, 정금리는 고운 선생이 지나가다가 이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그 시원함에 우물가에서 거문고를 탔던 곳이라 한다.
탑리는 봉상사란 절이 있었고 침점 마을의 또다른 이름을 삼태동이라 하였다. 건너편 정금 마을의 뒷산에서 삼태성(세 개의 큰 별)이 침점 마을을 비춰 장수마을이 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침점 마을도 주변의 마을과 같이 주로 차밭을 조성하고 있었다.
안 아주머니도 1,000여 평의 차밭을 조성하여 자체적으로 삼태다원이란 차공장을 만들었다. 4월14일부터 6월20일경까지 따는 차는 곡우 전에 따는 우전과 잎을 따는 날짜에 따라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나뉘며 잎이 클수록 향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다남 할머니는 90세의 연세답지 않게 정정하셨다. 20세쯤인 70년 전 화개천변에 벚꽃길을 조성하였고 화엄사 일대도 같이 심었으나 구례쪽 사람들은 왜놈꽃이라 하여 후에 뽑아버렸고 화개쪽도 나무를 심었던 군수가 많은 비난을 받으며 지내야 했었다고 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뒤로 하고 화개천을 떠난다. 섬진강변에 들어서 귀경길에 오르며
안성업 아주머니의 화개아리랑 4절을 되새겨 본다. ‘화개야 쌩기사(쌍계사) 네 잘 있거라, 명년 봄 곡우 때 내 돌아오마.’
물과 산,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곳 그곳이 지리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