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윤씨는 이러한 뚝심파 사진작가의 전형이다. 그는 산중에서 보름씩 버티기는 일쑤였고, 50여 일 산중에서 산 적도 있다. 그것도 거의 지리산에서만 그의 버티기는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는 지리산 사진작가라 불린다. 지리산을 주된 대상 삼은 사진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지만, 그의 사진이 그 중 두드러지는 것은 이런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그간 그가 낸 사진집도 <지리산 1>, <지리산 2> 등 모두 지리산 것뿐이다.

이 지리산의 작가 박환윤씨가 고희를 맞아 고희 기념 지리산 사진전을 열었다.(2002年) 40년 가까이 살아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전주 예술회관에서 11월1일부터 일주일간, 이어 서울 충무로 후지포토살롱에서 11월11일부터 일주일간 연 이 전시회는 연일 많은 사진동호인이 찾는 성황을 이루었다.

교편 잡은 직후인 55년부터 사진을 시작했으니, 반 세기 사진 인생에 대한 총정리격의 전시회인 셈이다. 더불어 그는 세번째의 <지리산 사진집>을 냈다.

산 좋아하는 것이 좋은 사진 얻는 비결

긴 산중생활은 산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대개는 잠 잘 텐트, 침낭, 먹을 것, 책, 라디오까지 다 갖추어도 입산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하산하기 일쑤다. 산중의 그 외로움과 정적, 밀도에 아무 변함없는 시간의 흐름을 번잡한 도회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좀체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산중의 수많은 새와 풀과 나무와 더불은 시간이 언제인지 모르게 지나는 산(山)사람이 아니고서는 수십 일씩 견디며 절정의 풍광을 자기 것으로 하기 어렵다. 박환윤씨는, “그러므로 사진가 이전에 산사람이 되어야만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지론을 편다. “산이 먼저냐, 사진이 먼저냐 누가 물으면 산이 먼저라고 나는 대답한다”는 그의 말에 좋은 산사진을 얻는 비결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라면 사진을 만들어야지, 어쩌다 가서 사진을 한두 컷 건지는 스타일은 사진작가라 할 수 없어요. 무겁다고 삼각대 없이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제자란 눔이 삼각대 없이 카메라 꺼내들면 우린 그냥 발로 걷어차버린다니께.”

그에게 사진을 배운 제자가 여러 명인데, 그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특유의, ‘욕이면서도 욕 아닌‘ 육두문자로 호가 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악의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제자들은 그의 장기 촬영산행 때면 종종 식량 지원조가 되곤 한다.

그는 전주 성심여고 수학교사다. 서울대 사대 물리학과를 나와 김제고교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했으며, 성심여고에서만 35년이다. 물리학을 배우면서 사진기의 광학적 원리와 구조에 매력을 느낀 것이 동기다. “찍으면서 곧바로 현상도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사진보다는 산이 조금 빠르다. 대학 다니면서 서울 근교의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산에 취미를 붙였고, 전주 성심여고 교사로 부임하면서 설악산, 한라산, 그리고 지리산 같은 큰 산에 다녔다. 방학 기간 내내 산에 가 있으려고 방학 전에 일을 좀 더 했고, 주임이나 과장처럼 방학 때도 출근해야 하는 직책은 극구 마다했다. 그렇게 해서 산중 생활을 연간 석 달쯤 했던 것이다.

한 달 넘는 산중 생활에 필요한 식량이나 연료 등속은 아무리 제자, 후배들이 지원해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종종 ‘등산 온 선남선녀들한테서 식량을 약탈’했다.

“아,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고 여기서 뭣 하고 있는디, 거 뭐냐, 공연히 지고 내려가느라 고생하덜 말고 쌀이며 연료 다 놓고가, 하면 다 내려놔, 그냥.”

먹다 남은 쌀은 페트병에 넣어 몰래 숨겨두는데, 다람쥐 이빨도 안 들어가고 오래 두어도 쌀이 변하지 않아서 장기 보관엔 그만이라고 한다. 10년만에 꺼내 먹은 것도 있는데, 햅쌀처럼 말짱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로 햅쌀 같기야 했겠는가. 그는 그렇게 산중 생활에 스스로 취해들었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그를 만났던 그의 제자 정장화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산사진을 찍는답시고 겁없이 지리산을 헤매던 나에게도 그와의 조우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물론 방학기간이었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홀로 막영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왔고, 그런 생활을 지탱해주는 대형 배낭의 엄청난 하중이 나를 아연케 했다.…오직 그만이 읽어낼 수 있는 지리산의 코드가 그의 사진에 섬세하게 해독되어 있다.’

박환윤씨는 특히 겨울 지리산의 코드 읽기에 능한 것 같다. 그의 지리산 사진은 사계절에 걸쳐 다양하지만, 특히 겨울 지리산 사진이 압권이라 할 만하다. 그 자신 겨울 지리산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숲의 옷이 벗어지고 운해와 연무가 끼면 산(山)갈비가 다 드러나 산의 정기를 여실히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한 것도 이러한 산사진관에 기인한 것이다.

수만 점 중 마음에 드는 것은 대여섯 뿐

주능선은 물론 남북으로 산재한 실계곡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도 제자 정정화씨는 전한다. 그렇듯 수십 년간 찍은 지리산 사진은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할 정도로 많다. 그 중에도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150여 점 골라 사진집으로 엮었고, 그 중 30여 점을 엄선해 사진전을 열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놈은 대여섯 점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그가 가리킨 사진이 이번호 162페이지 화보에 두어 장 섞여 있다.

그 대여섯 점의 사진은 사진을 눈요기 대신으로 보는 눈에는 오히려 별로 신통치 못해 뵌다. 그것은 사진도 그림이라는 그의 독특한 사진관 때문인지 모른다. “화가는 오래도록 일일이 그려서 그림을 완성하고 사진작가는 한 순간에 완성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온 산을 다 넣으면 기록사진이고 풍경사진일 뿐이지요. 어느 한 부분을 선택해야 하고, 오랜 시간 기다려 선택하고자 한 장면이 드러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사진 작업이라. 그런데 그게 실은 뭐냐, 조물주가 그려주는 것이란 말이지. 그래요. 앞으로 목표라면 조물주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것이라.”

순간 포착을 중요시하는 그는 철저히 줌렌즈를 선호한다.

“장비란 비올 때 장화 같아야 하는 것이거든. 줌은 연속적으로 변하는 틀 속에서 최상의 것을 찾아낼 수 있어요. 단일 렌즈로 일단 찍고 나중에 트리밍한다는 거, 그게 말 같이 되는 게 아니지.”

그가 애용하는 것은 아사히펜탁스 45~80mm, 그리고 80~160mm 줌렌즈다. “물론 줌렌즈란 많은 결함이 있지만 다양한 구도의 연속적 탐색이 가능하다는 한 가지 장점이 아홉 가지 단점을 가려준다”고 그는 줌렌즈를 옹호한다.

그는 수십 년간에 걸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진작업을 해왔지만, 역시 대다수 사진작가들이 그렇듯 별로 큰 돈은 벌지 못한 것 같다.

“본전도 못 건졌으니, 좋게 말하면 기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친 거지. 하지만 말이지, 귓바퀴로 물양동이 들어올리는 그런 쓸데없는 기행은 아니지 않아요?”

이제 고희를 넘겨 몸도 많이 불편하니 예전 같이는 사진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진전도 부덕함과 몰예술성이 여전한 듯하여 불만’이라는 그이니 지리산중 버티기 또한 여전히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