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받이 (김종례)

 53.5*72.5Cm, 1991 Oil on Canvas

 

                       
                                           
    씨받이 마을
                                                                               (글- 이병훈)
    피아골 깊고 깊은 피아골
    성신굴(性神屈) 제단에는 갖가지 음식이 가지런히 놓여졌다
    정성을 다한 제물에서는 아직도 김이 나
    제물은 한결 돋아 보인다
    겉모양 뿐 아니라 그 속살까지 토실토실하다
    그 속살까지 반들반들 익은 제물 엉뚱한 식욕을 일어서게 한다
    촛불이 세 개 안팎으로 켜졌다
    촛불은 말없이 이글거린다
    불꽃이 바위 천정에 닿아 그을린다
    그 앞에 성신어머니(性神母)가 조아리고 앉았다
    씨받이(種女)들은 성신어머니의 뒤에 옹기종기 서 있다

    제단을 향한 눈 눈들 진지하고 엄숙한 눈매
    금세 신도 감동할 지경이다
    온몸이 저려오는 엄숙한 축제 성신어머니는
    여기저기 술잔을 채워놓는다
    술잔 안 막걸리가 거무스레 떤다
    가벼운 출렁거림 성신어머니는 다시 조아리고 앉아
    이번엔 바위같이 굳은 듯이 단정이 앉아 두 손바닥을 모아 빈다
    두 손바닥을 모아 비손하며 중얼거린다
    소원의 소리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을만치 낮다

    사람이 알아들었자 소용없는 소리들 신만 알아들으면 되는 말
    신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아무리 낮은 목소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아무리 어물거리는 소리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라도
    소리 아니고 사슴의 두근거림만으로도 알아듣는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알아듣느다
    신은 큰 소리가 아니더라도 소원을 거둔다
    큰 소리보다 더 낮은 소리
    소리보다 더 낮은 소리
    소리보다 간절한 두근거림의 소원을 더 잘 거둔다

    성신어머니는 입만 떤다
    그 간절함 때문에 말문이 열리지 않는가
    입술만 떤다
    바위에 새겨진 성신(性神) 아버지는
    넌지시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 아래를 내려다 본다
    표정은 변하지 않으나 알았다는 듯 조용할 뿐
    성신 옆에 새긴 남근(男根)이 크게 보인다
    옆에 앉은 시동(侍童)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오르더니
    사내 냄새가 물씬 난다

    그 육중한 사내의 팔이 성신어머니를 휘어감아 끌어안는다
    성신어머니는 사내에 안겨 이번엔 그를 끌어들이는 듯
    두 얼굴은 익은 과일 보이는 것을 얼굴뿐이고
    손에 닿는 것은 토실토실한 살과 살의 감동 그것뿐
    성신어머니와 사내는 한 덩어리
    어느새 몸에 걸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멀뚱멀뚱 옆에서 있는 남근석 팽창될대로
    팽창된 감성 하나가 된 것
    그리고 뜨겁다 쇠붙이같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
    성신어머니는 목견디어한다
    둘이는 한 몰이 된 채 꿈틀거린다

    온몸이 꿀틀거린다 산이 꿀틀거리듯 그럿게 꿈틀거린다
    씨받이들은 꿈틀거리는 몸부림을 지겨본다
    달아오른 얼굴을 지켜보는 눈들 금세 그 굿판으로 뛰어들 것 같이
    달아오른 얼굴로 눈이 뜬 듯 지켜보는 눈망울 훨훨 타 날아갈 것 같은
    한마당이 끝나자 숨을 내려쉰 성신어머니는 일어서선 춤을 춘다
    너울너울 춤을 추며 주문을 왼다
    신의 춤이다

    신명의 축제 씨받이들도 같이 어울려 춤을 춘다
    다만 전설이란 이름의 이 축제는 전설같지가 않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바스락거린다
    희미한 바위의 성신상 표정이 점점 드러난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금세 걸어나와
    성신어머니와 시동의 등을 다독거려 줄 것 같이 드러난다

    성신어머니는 씨받이의 절대자 씨받이를 줄줄이 거느린다
    단 하나 거느린 시동(사내)
    인근마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이 있으면
    거느리고 있는 씨받이는 보내 아이를 낳게 해주고
    대가고 먹고 살 재물을 받는 씨의 어머니
    씨받이는 사내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넘겨 주고 혈육의 정을 끊고 돌아온다
    딸을 낳으면 데리고 돌아온다
    데려온 딸아이는 커서 씨받이가 되는 것
    씨받이는 딸로 딸로 내려 물려내린 씨받이
    피아골 깊은 피아골은 그 먼날의 전설이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너무 가까이에서도 들려온다 

 

     

                              
                                     
타인의 아들

    오늘은 복임이가 팔려가는 날
    마을 안은 우울하다 무겁게 침정된다
    성신어머니는 복임을 안방으로 불러 앉힌다
    그리고 타이른다
    "다 아는 일일 테지만 성심 성의를 다해야한다. 정성껏 받들어 아들을 낳아 주는 것이 우리 본분이다. 잠자리는 제사 때 다 모았듯이 모든 것을 털어 바쳐야 아들을 낳는 것이다. 다 우리의 팔자다. 우리에게 주어진 팔자이니 그렇게 하는 길밖에  없느니라. 알아 들었지?"한다
    복임은 얼굴을 붉혔다
    제사 때 성신어머니와 시동이 어우러져 꿀틀거리는 꼴이
    퍼뜩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복임은 겨우 열일곱 시집 갈 나이는 되었으나
    팔려간다니 앞이 캄캄한 일
    여염집 가시네같으면 시잡간다고 집안이 떠들썩하고
    동네가 뒤숭거리며 축제에 싸여 기쁨 반 구끄러움 반일텐데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복임은 아찔하다
    사내의 덩치만 생각해도 아찔하고 어지럽다

    한낮에 쯤 가마가 당도
    그래도 가마는 보내왔다
    목임은 바깥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그냥 아랫목에 처박혀 우구리고 앉았다가
    문이 열리고 들려온 예물 보내온 옷으로 갈아입는다
    속옷까지 갈아입는다
    복임은 가지랑이 사이를 훔쳐본다
    처음 보는 것 그실 본 적은 없다
    야릇한 느낌이 소름친다
    분단장에 새 옷으로 그것도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노리개까지 늘어뜨린 복임은 딴 사람이 됐다
    어엿한 신부 앳띠고 고운 얼굴 땋아 올린
    낭자 가지런하게 빗은 머리칼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참한 규수요 신부 하얀 버선코가
    문 밖으로 나오더니 가마에 오른다
    미투리는 가마 안에 비껴놓고 사뿐이 앉는다
    가마가 덜컥 드리더니 좌우로 기우뚱거린다
    밖에는 깉은 씨받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점점 마을에서 멀어진다
    내내 참고 눌렀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쏟아져 내내 운다
    소리도 못내고 흐느껴 운다
    산길을 벗어나 밭길 논길을 번 갈아 얼마나 왔을까
    다저녁 때가 돼서야 당도
    한 삼백섬거리
    근동에서는 내노라 하고 사는 부잣집
    쥔영가은 나이 삼십이 넘드락 슬하에 자식을 못 가지니
    집안에서 서둘러 씨받이를 들이게 된 것
    처음에는 사양하던 쥔영감도 그저 되는대로 맡겨 이루어진 일
    안팎 기와집으로 별채까지 있었고
    기와 담장이 휙 두른 울 안은 오육백평
    노비며 머슴을 줄줄이 거느리고 있었다

    미리 채비를 해둔 터 가마가 당도하자
    안방마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그길로 복임은 별채에 들어 앉혔고
    몸종같은 어린 계집 하나가 따랐다
    목임은 별채인데도 크고 티 하나 없이 깨끗한 방에 들어섰으나
    미처 앉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방안을 휘이 둘러본다
    한쪽에 장롱 경대 옷걸이 핫대 궤 위에는 눔이 부시게 흰 광목
    호청을 낀 이불 요가 차곡차곡 어긋남이 없이 놓여 있다
    목임은 몸종이 이르는대로
    아랫목 방석 위에 앉았다
    얼굴은 어리둥절할 따름
    목임은 산같은 일이 순간순간 닥쳐오는 것만 같다
    저녁밥도 뜨는 둥 마는 둥
    지금가지 먹던 밥상에 비할 수 없이 갖은 반찬에 고기국
    진수성찬이지만 입맛이 쓰기만 했다

    차츰 촛불이 환해진다
    바깥이 어두워졌는가 방안은 촛불로 가득하여 유난히 환하다
    화촉이란 이런 것인가
    목임에게는 낯설을 뿐 침도 안넘어간다
    그냥 꽉 막힌 것 같이 잡혀 잇는 복임은
    앉아 있으나 서성거리고 있는 것
    닥쳐오는 시간속으로 빨려들면서 빨려들지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잡혀온 새 잡혀와갇힌 새다
    숨만 샐숙샐숙 뛰는 가슴 밖에는 기침소리가 나더니
    두 번 세 번 나는 것 같더니 문이 뻐끔이 열리면서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선다

    복임은 일어섰다
    사내가 자리에 앉자 윗목으로 비껴 가라앉듯이 앉는다
    뒤따라 술상이 들어오고
    몸종이 어린 계집애가 무거워라 들고 들어서선
    사내 앞에 가만히 밀어 놓고
    촛불을 상 가까이 옮겨놓곤 사라지듯 나간다
    사내는 복임에게
    "가까이 오너라, 너와 나의 밤이 되었구나. 떳떳하지 못하나 다 이런 것이 세상 일이니라.어려워 말고  가까이 오너라, 가까이 오래두."
    하며
    끌다시피 복임을 상머리에 앉히고는
    "술을 딸라. 초야인 셈 아니냐. 자, 여기에 술을 딸라."
    복임은 성신어머니로부터 배운대로 하는 일이지만
    술주전자를 든 손은 떨린다
    힘을 주어 쥐어도 떨린다
    떨리는 주전자 꼭지로 찔금찔금 술잔은 채워지고
    사내는 주전자를 뺏아들 듯 들고
    복임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랐다

    사내는 술잔을 들곤 복임이 술잔을 들도록 강요하면서
    사내는 목임이 마시든 말든 마시곤 또 잔을 채워 마신다
    한시경 지났을까 사내는 몸종을 무르더니 상을 내라 한다
    자리가 펴지고 사내가 웃옷을 벗고
    속저고리 속바지바람으로 촛불 저쪽에서 어른거린다
    성화에 못이겨 속저고리 속치마바람이 된
    복임이 또한 어른거린다
    아지랑이 속에서처럼 복임의 가슴이 속저고리 안에
    유난히 불쓱 돋아난 탄력이 몸매가 속옷 밖으로 드러난다
    사내는 복임을 끌어안은 채 이부자리 속으로 묻힌다
    복임은 사내 하는대로 맡겨버렸다

    촛불이 꺼지고 사내의 몸이 복임에게 달겨 붙어
    목임은 뛰는 가슴 가뿐 숨소리를 누르며 부들부들 떤다
    그냥 떨린다
    복임은 짓눌리며 성신어머니와 시동이
    제단 앞에서 벌이던 그 꼴이 떠오른다
    점점 숨은 차오른다
    묵지근하게 뜨겁게 달아 오른다
    처음에 무겁던 사내가 무겁지 않다
    깊어갈수록 무겁지 않다

    뜬 눈으로 샌 그날 밤
    사내는 곤하게 잔다
    밖에서 첫닭이 울고 둘째닭이 울고
    하나가 울기 시작하자 동네 수탉이 이어받아우는 새벽
    이제 날이 새겠지 날이 샌 그날은 어찌 변해 있을까
    복임은 크게 변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팔려온 지 넉 달째
    복임에게 태기가 생긴 지도 두 달째 올 것이 왔는가
    싶지만 불안한 나날
    하는 일도 없이 먹고 들어앉아
    기껏해야 뒤뜰에 나가 맴도는 나날
    맴돌기에 싫증이 난 지 오래 편한 것도 병인가
    자꾸만 뛰어 나가고 싶고
    자꾸 일하고 싶어 먹는 것조차 께름칙하다
    주위는 그저 쓸쓸하다

    먼 산 산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이 그렇게 좋다
    마음에 스며들 듯 좋다
    가끔 날아가는 황새 황새가 한없이 부럽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것
    어찌 사람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을까
    그 부러움은 하늘 저 끝에까지 이른다
    철이 변하듯 복임의 몸에 이상이 온 것을 어찌 해야할가
    알려야 할까 어떻게 알리지 목임은 저 하늘을 향해
    눈빛으로 물어본다
    애원하듯 물어본다
    하늘은 그저 태연한 채 대답이 없다
    복임은 외롭다 하늘이 외면하는 것 같아 더욱 외롭다
    서방이 어디 서방인가 상전이지
    서방이 진짜 서방이 아니라 더욱 외롭다

    입덧이 난 날로부터 목임은 제 몸이 아니다
    안방마님인가가 하라는대로 할 뿐 모두가 타인
    잠자리에서부터 먹는 음식 말하는 태도
    앉음새 섬새 걸음걸이 그리고 볼 것 못볼 것 가려야 한다
    알 품은 새 밤낮 알을 품고 꼼짝 않는 새다
    새만도 못하다
    새는 제 뜻으로 하지만 복임은 시키는대로 한다
    그러나 목임은 배 안에서 자라는 핏덩어리가
    제 새끼 제  새끼라고 강변한다
    제 몸 제 피를 받아 제 몸에 흐르는
    젖줄 강물을 대먹으며 크는 제 새끼라고 강변한다
    왜 강변하는가
    복임은 강변하면서도 닥쳐올 불안을 안고 강변한다
    달이 갈수록 애기가 커갈수록 불안도 커가고
    안방마님이 무섭다
    시절은 좋아 한참 농사철인가 바깥에서는 빠쁘게 나돌고 있는데도
    복임은 그저 울안에 갇힌 짐승
    성신어머니가 떠오르고 언니 아우들이 저만치 그립다

    늦여름 어느날 닥쳐온 산기 집안은 발끈 뒤집힌다
    유모 몸종들이 별채 복임의 주변에 모여
    산고에 시달리는 복임을 도와 순산을 기다린다
    복임은 매달아 늘어뜨린 띳줄을 잡고 움켜잡고
    온몸의 힘을 모아  쏟는다
    낳을 듯한 애기는 좀체로 나오지 않고
    아침에 시작한 산고가 저녁나절이 다돼간다
    복임은 지쳤다
    초산이라 더 그런지도 모른다고 유모가 중얼거렸다
    지쳐 깔아앉을 것 같다
    '복임아 갈아앉으면 죽는다'하고 외치는
    성신어머니의 호령이 들린다
    목임은 놀란 듯 다시 힘을 모아 쏟는다

    출산 애기가 태어났다 드디어 출산
    태어남
    한 목숨의 태어남 한 사람의 태어남 준엄한 순간
    역사의 태어남 역사가 무엇이던가
    사람의 태어남 살아감 그리고 죽어감이 아니던가
    여기 또 한 역사가 시작된다
    사내의 역사가
    복임은 의식을 찾고 물어본다
    '사내'였다
    복임은 흐뭇했다 사내을 낳은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사내를 낳은 것이 얼마나 대견한가
    크나큰 벼슬을 한 것 같이 흐뭇했다
    그러나 복임이 미처 바라볼 사이도 없이
    애기는 유모에게 넘어갔다
    복임만 그 무서운 산고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 누워 있다
    큰 전쟁이 지난 폐허처럼 큰 회오리가 휩쓸고 간
    폐허퍼럼 복임만 남았다

    한 이레쯤 지났을까
    복임이 자리르 털고 일어나자
    산으로 돌아와야 하는 날
    삼줄은 아직 싱싱하게 걸려 있는 대문을 나서 타고
    왔던 가마에 오른다
    얻을 것 받을 것 다 받았다고는 하지만 허전하기만한 빈 몸
    다 털어바치고 돌아가는 것이 나인가
    그저 알몸으로
    그까짓 억만금이 있으면 대순가 자식을 주었으니
    부끄럽다 원통하다 어찌하다 나는 씨받인가
    사람이 무엇인가 복임은 자꾸만 짐슴같은
    느낌이 들어 부끄럽다
    자꾸 뒤를 돌아보나 멀어질 뿐이다
    아들과의 거리는 멀어질 뿐 아랫배가 사르르 아프다
    아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아들이 보고 싶고
    그럴 때는 아랫배가 아프다
    한해 전에 딸을 안고 돌아온 쪼간이가 부럽다
    자꾸만 부럽다 딸이든 뭐든 안고 돌아온 것이 부럽다

    이미 눈물도 말라버린 눈 퀭하게 거저들어간 눈에
    다가서는 산길이 그렇게 험하고 다가서는 산이 높게만 보인다
    멀리 밭 가는 나낙들이 부럽다
    해는 아직 중천이지만
    복임은 거의 저녁 때같이 우중청충고 으시시 춥다
    어디선가 수꾹새 운다
    청승맞게 운다
    누가 씨받이 여인을 알까 억장이 막히는 그 수난을 알까
    제 자식을 던져주고 돌아서는 어머니의 절망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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