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우리 국악의 발원지로 꼽는 주장도 있다. 그 연유를 ‘운상원(雲上院)의 옥피리’에서 찾고 있다. ‘여지승람’ 하동지에는‘칠불암은 삼신동에 있는데, 옛이름은 운상원이다. 그 옛날 옥부선인이 여기 살면서 옥피리를 불었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옥부선인이란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보옥선사를 일컫는다.

칠불암의 전신인 운상원은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옥의 오빠 보옥선사가 일곱 왕자를 성불시켰다는 설화를 안고 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것보다 324년 먼저 남방불교가 김해로 들어왔다. 보옥선사는 아유타국의 피리인 분지를 가져왔고, 지리산 운상원에서 이 피리를 불었다는 것이다.

보옥선사와 함께 들어온 악기와 음곡은 우리의 토속음악과 어우러져 국악의 시원이 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지리산 운상원 옥피리 설화는 설화의 영역을 벗어나 신라시대에 와서 숱한 향곡(鄕曲)의 원류를 낳게 된다. 그 기록은 ‘삼국사기’에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신라 사람 옥보고가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배운 지 50년에 새 곡조 30곡을 지어 속명득에게 전했다. 속명득은 귀금에게 전했는데, 귀금은 지리산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신라왕은 이들이 이룬 금도(거문고)가 끊어질까 염려하여 윤흥을 남원으로 보내 그 음악을 전수받게 하고 그곳의 태수로 삼았다.

윤흥이 부임하여 안장과 청장 두 소년을 가려 뽑아 지리산에 들어가 배우게 했다. 그러나 귀금은 좋은 곡 몇 곡은 가르치지 않았다. 윤흥이 술병을 받들고 부인이 잔을 들고 예와 성을 다한 뒤에 그가 비밀리에 해오던 표풍곡 등 세 곡을 전수받았다. 그리하여 안장은 두 아들 극상과 극종에게 가르쳐 극종은 새로 일곱 곡을 짓는다.…’위에서 말한 지리산이 남원인지 운상원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지리산이 우리 음악의 산실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게 입증한다.

지리산은 또한 불교의 정통음악 생성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산(魚山)의 묘(妙)’라는 범패음곡(梵稗音曲)이 쌍계사의 전신인 옥천사에서 진감선사에 의해 원류를 낳게 된다.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 들여온 범패음곡은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다.

범패는 일명 범음(梵音), 인도(引導), 또는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이 불교음악은 가곡, 판소리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성악곡의 하나다. 선사는 77세로 입적하기까지 12년 동안 옥천사에서 범패를 가르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소리라면 남원을 빼놓을 수 없다. 정령치에서 남원으로 흘러내리는 구룡계곡 들머리 육모정 앞에는 상징적인 두 기념물(?)이 있다. 춘향의 묘와 명창 권삼득의 기념비다. 권삼득은 이곳 폭포에 콩 두 말을 메고 와 소리 한 곡에 콩 한 알씩 던져넣는 식으로 피나는 공부하여 천하의 명창이 됐다.

‘춘향의 묘’는 좀 엉뚱하지만 광한루원과 판소리 등 이 지방의 내력을 대변한다. 판소리의 본향은 여기서 가까운 운봉면 비전 마을이다. 판소리의 가왕(歌王) 송홍록과 송광록, 그리고 명창 박초월이 바로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판소리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송만갑은 구례에서 태어났지만, 송광록의 손자다.

송홍록의 귀곡성은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특히 춘향가 중 옥중 장면의 귀곡성이 특출했다. 그는 동편제 창법을 창시하는 등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받는다. 송만갑은 동편제의 법통에 만족하지 않고 동편의 체질에다 서편의 맛을 가미하여 다시 동편화시킨 이른바 송만갑제 판소리를 만들어냈다가 가문으로부터 파문당했다.

수지면 호곡리에는 몽심재라 불리는 고택이 있다. 부산 처녀 이화중선이 17세 때 이곳 몽심재로 출가했으나 협률사에서 공연을 보고 시가를 뛰쳐나온다. 그녀는 장득주에게 판소리에 입문한 뒤 송만갑 이동백 유성준에게 배워 명창이 됐다. 어찌나 소리가 곱든지 갈비뼈가 하나 없기 때문이란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송홍록-송우룡-송만갑-김정문-강도근으로 면면이 이어지는 동편제의 고향 남원에는 민속국악원이 있다. 국립국악원이 정악을 다루는데 비해 이곳은 속악을 주로 가르치고 보급한다. 내일의 명창을 꿈꾸는 많은 인재들이 지금도 판소리를 비롯한 창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아쟁 북 등을 배우고 익히는 데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