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 와 지리산

 

우리 나라의 모든 명산에는 그 나름대로의 전설이 있다. 또,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것도 적지 않다. 지리산도 명산이기에 예외는 아니어서 위와 같은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오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부에 자리잡아 '내가 왕이요'라며 소백산맥 한허리에서 머리를 불쑥 내밀고 어마어마한 산덩어리를 이룩한 지리산. 전북. 전남. 경남의 3개 도와 남원. 구례. 산청. 함양. 하동의 1시 4개 군에 걸쳐 있고, 해발 1,915m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반야봉, 노고단(老姑壇) 등 많은 봉우리를 안은 지리산은 누구든 아예 산이 아니라 봉의 무리라 했다.

이렇듯 잘 알려지고 한반도 안에서 크게 손꼽히는 산이건만 지리산이란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질 않다.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했다. 방장산은 봉래산(蓬萊山)(금강산), 영주산(瀛州山)(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삼신산의 하나이다.

지리산은 또, 두류산(頭流山),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두류산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
                                                              조식(曺植) (1501-1572)


여기에서의 두류산은 바로 지리산이다. 그러면, 두류산과 지리산은 이름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의문은 먼저 호남 지방의 방언 특징을 알아보면 쉽게 풀린다.

이 지방에선 발음에 있어서 구개음화가 아주 심하다. 즉, 형님을 '성님', 힘을 '심', 기름을 '지름', 길을 '질', 드새다(뜬눈으로 밤을 지새다.)를 '지새다', 디뎌를 '지뎌', 디밀다를 '지밀다'식으로 발음되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볼 때 , 지리산의 '지'도 '디' 또는 '드'가 구개음화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얻게 되며, 이 과정에서 지리산과 두류산(두리산)의 음운적 연관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두루 〉두리 〉드리 〉디리 〉지리


즉, '두류'는 '두루'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보이며, 그 두루가 호남 지방식 음의 변화 과정에 따라 '지리'까지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두류산 또는 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두류산이나 두류봉, 두류령은 한남 단천과 길주 사이, 한남 문천과 평남 양덕 사이, 강원 화천, 전남 신안, 전북 순창, 전북 임실과 순창사이, 경기 이천, 강원 평창, 전남 나주, 경남 거창, 평북 영원과 맹산 사이 등 여러 곳에 있다.

두루봉은 전남 강진과 헤남 사이, 강원도 태백산맥의 향로봉 남쪽, 명주와 양양 사이 등에 있고, 두리봉은 강원도 삼척, 정선과 명주 사이, 춘천, 평창, 전남 해남, 경기도 광주, 충북 보운과 옥천사이, 충남 논산, 전북 전주, 전북 임실, 전남 영암, 대구, 경북 군위 등에 있다.

두로봉은 강원도 오대산에 있고, 두류산은 전남 해남, 두량산은 강원도 삼척, 두룡봉은 평북 강계, 강원도 이천 등에 있다.

그런데, 이들 산의 특징을 보면, 산 봉이 덩글거나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느 터를 둥글게 울타리 치듯 다른 산과 함께 휘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3) 두류는 두루와 두리에서


두루와 두리 또는 그에 가까운 말을 옛말이나 사투리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앞의 두류, 두리 등의 산이름과의 관련을 알아볼 수 있어 재미가 있다.

용비어천가 69장에 보면, '드르레 용이 싸호아(들에서 용이 싸워)'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드르'는 들의 옛말인데, 이 말은 지방에 사투리로도 남아 강원도에서는 '드루'또는 '뜨루'라 하고, 함경도 지방에서는 '두루', 또는 '두뤄'라 한다.

'뜰'은 집안마당이란 뜻이지만, 전남이나 평북지방에선 들의 사투리로 쓰이고 있으니, 이 말이나 뜨락, 뜨란, 뜨렁 둥도 모두 '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루, 두리를 들에 관계지어 설명했지만, 들은 원래 '달'에서 나온 말로 '땅' 또는 '산'의 뜻이다. 대구의 엣이름 '달구벌'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분지)의 뜻이다. 강원도 고성(高城)의 삼국 시대 이름은 달골인데, 달이 산이므로 '높다'의 뜻으로 취해 나중에 '고성'으로 바뀐 것이다.

종이를 가로로 길게 이어 둥글게 돌돌 만 물건을 두루마리라 하는데, 여기서의 두루는 둥글게의 뜻이다.

'두렵고'는 '둥글고'의 옛말로 , 그 원영에는 '두렷다'와 '두려(ㄷ)다'가 있다.

이 말에는 '두리'(둘레)라는 말이 나와 '두리목'(둥근 제목), '두리반'(두레상), '두리새암'('우물'의 사투리), '두리 함지박'(둥근 함지박)등의 말을 파생시켰고, '돌려가며 돕는다'는 뜻의 '두레'라는 말도 생겼다.

우리의 전통 옷 중에 두루마기가 있다.(두루+막이〉두루막이〉두루마기) 주로 예복 또는 외출할 때 겉 옷 위에 입는 한국 특유의 웃옷인데, 한자로는 주의(周衣), 주막의(周幕依)라고 해서 '둥글 주(周)'자를 넣는다.

그렇다고 보면, 산마루가 두루뭉실하거나 어느 고장을 울타리 치듯 둥글게 휘어 돈 산을 두루산 또는 이에 가까운 산 이름으로 굳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두레산, 두른산, 도른산(돌은산)과 같은 방언 지명이 남아 있게되고, 더러는 두류(頭流), 두로(頭老) 등의 한자식 산이름으로 표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4) 백두산 맥이 흘러 '지뢰'되고


대흥사(大興寺)가 있는 호남의 명산 두륜산은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백두산은 지륜(地輪)(지리)이 흘러 지리가 되고,
 천관(天冠)(장흥군에 있는 산)이 되며,
 다시 두륜(지리)이 되므로 백두(白頭)라고도한다. "
                   
                                          〈신중동국여지승람(남원 도호부)〉

이로 보아, 두륜산이 지리산과 동의어가 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전국에는 '달' 또는 '둘'의 음을 취한 땅이름들이 무척 많다. 이러한 이름들이 산이나 고지(高地)에 많은 것으로 볼 때, 이 '달, 둘(두리)'이 산과 관련된 옛말임을 생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  배우리,  우리 땅이름을 찾아서 1편:' 산, 강, 바위편',   토담. 1995  
    SK Telecom, '내고장 의미 찾기; 먹과 풍류의 땅-전북편'

 

http://inchon-h.ed.inchon.kr/su/geonews에서 빌려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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